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 8점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지음, 박성식 옮김/가람기획

기원전 2333년.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믿고 있는 해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지 궁금했다. 비슷했겠지? 고작 4천 년 동안 사람이라는 동물이 뭐 그리 많이 달라졌을까? 동물로서의 사람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문화는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시절에 남겨놓은 기록이 없으니 궁금해도 참고 살 수밖에요.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지금의 이라크 남부 지역에서는 수메르인들이 쐐기문자로 점토판에 기록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수메르인들이 이곳에 살기 시작한 지는 훨씬 더 오래되었지만, 대략 기원전 3,000년쯤부터 상형문자를 쓰기 시작했고, 기원전 2,500~2,000년쯤에는 표음문자 체계로 넘어옵니다. 일단 표음문자가 되면 해독이 비교적 쉬워집니다. 그래서 고조선 사람들과 비슷한 시기에 살고 있던 수메르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평생 수메르에 매달린 학자가 이 점토들에서 발견된 생각들을 39개의 주제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길가메시 이야기도 있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처음 세 가지입니다. <학교>, <촌지>, <청소년 문제>입니다. 그 당시에도 "요즘 젊은것들은...", "선생님 저희 아이 좀 잘 부탁합니다" 가 있었다는 내용인데,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소위 세계 4대 문명 중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고 있고, 이 책이 사방에서 <최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지요, 아마 더 앞선 문명들의 증거는 또 등장할 겁니다. 하지만 그 문명들이 이처럼 상세한 기록을 남겨두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니 기록으로만 따지면 계속 최초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처음 번역되어 출간된 것은 2000년이고, 제가 읽은 것도 그 근방일 겁니다. 원서(History Begins at Sumer: Thirty-Nine Firsts in Recorded History)는 더 오래되었는데, 초판이 나온 것이 1956년, 이 번역본이 원전으로 삼고 있는 3판이 나온 것이 1981년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도서관에 가니 새로 들어온 책 전시대에 놓여 있더군요. 서지 정보를 보니 올해 개정판이 나왔다네요. 가진 책과 대조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뭘 개정했다는 건가? 내용에서는 차이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과거에는 "역사 명저 시리즈" 의 1권으로 나왔으나, 이번 책은 그런 시리즈에 속하지는 않았습니다. ISBN이 바뀌었고, 표지가 좀 달라졌고, 가격이 20%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