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1
리상호 번역으로, 보리에서 열하일기가 세 권으로 출간되던 때부터 벼르다가,
이제야 시작합니다. 하지만 결국 손에 든 책은 돌베개가 내놓은 김혈조
번역입니다. 두 번역을 꼼꼼히 비교하고 선택했다기 보다는 북한학자의
어투보다는 읽기에 편하지 않겠느냐는 단순한 계산입니다. 나중에 기회
있으면 도서관에서 찾아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부 세 권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권만 소개합니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의 중국 기행문으로,
1780년 청나라 건륭황제의 70회 생일 축하사절단에 끼어 중국에 간 후,
자유롭게 북경과 열하를 유람한 체험을 정리한 글입니다. 원래 열하가 목적지
였던 것은 아니고, "막상 북경에 도착해보니 황제가 열하로 피서 갔더라"
라는 황당한 일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원래 기행문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가보지 못한 지방의 풍습을 볼 수 있고, 집 떠난 사람들이
떠올리는 생각들도 좋습니다. 이 책처럼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는 생활사적인 가치가 더해지니 더욱 좋습니다. 책 머리에
연암의 글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해 이러 쿵 저러 쿵 하지만 전 그냥
기행문으로 읽습니다. 그냥 옛 사람들 사는 모습 본 것으로 족합니다. 거기에
연암이라는 글 잘 쓰는 이의 생각을 엿볼 수 있으니 더욱 좋습니다. 새 것을
찾기 위해 옛 것을 익힐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옛 것도 좋은 것입니다.
오늘의 의미를 찾기 위해 옛 것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옛
것의 의미 그대로 두어도 좋습니다. 그래야 간혹 연암이 바보 같은 소리를
해도 넘어갈 수 있고, 여전히 그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1권은 북경으로 갔다가, 황제를 쫓아 허겁지겁 열하에 도착할 때 까지
입니다. 책은 전혀 고루하지 않습니다. 기행문이라는 형식이 오늘날의
블로그와 유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책에 수록된 풍부한 도판은
글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듭니다. 연암이 중국의 문사들과 말은 통하지
않지만 밤새워 필담을 나누는 장면을 보면서, 요즘 같으면 아이폰으로
음성합성기를 동원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권에는 유명한 "호질"외에도 연암의 중국 장관론과 수레에 대한 강론이
실려있습니다. 읽다 보니 수레라는 용어는 바퀴 달린 탈 것 뿐만 아니라
기어나 도르래 같은 회전하는 기계장치에 모두 사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책은 깨끗하게 나왔습니다. 단지 좀 무겁고 흐느적거리는 종이를 써서 들고
다니며 읽기가 좀 불편하다는 것이 흠입니다. 끝에 찾아보기도 준비해
놓았습니다만, 세 권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 찾아보기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