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필비 스캔들

디클레어 - 8점 팀 파워스 지음, 김민혜 옮김/열린책들

1963년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소련 간첩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서울대 출신 국정원 고위직이 십여 년 간 이중 스파이로 암약해 왔음이 드러나서 북한으로 탈출한 것입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킴 필비(Kim Philby)라는 인물로 영국 MI-6 의 반첩보과 과장을 역임했고, 한 때 부장 직에 오를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중동 전문가이며 유명한 탐험가인 세인트 존 필비였기 때문에 사회에 더 큰 충격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필비는 캠브리지 재학시절인 1933년에 소련에 포섭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40년에 정보부에 들어간 뒤로 1951년에 의심을 받아 보직 해지될 때까지 10여 년을 이중 간첩으로 활동해 온 것입니다. 이 후로도 확실한 증거가 확보되어 소련으로 탈출하게 되는 1963년 까지는 10여 년의 세월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소련에서는 KGB 대령까지 진급했고, 그 곳에서 만수를 누리다가 1988년에 사망했습니다. 아내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의 회고나 기록이 좀 있기는 하지만, 직업이 스파이인지라 그의 이야기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삶에는 어느 정도 신비한 후광이 깃드는 것 같습니다. 그의 이름에 사용된 예명인 Kim 도 그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붙여준 것으로, 키플링의 소설 “Kim” 의 주인공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Kim 의 활동무대가 극동아시아를 둘러싼 러시아와 영국간의 암투인 그레이트 게임인 것은 묘한 울림을 줍니다. 아들의 운명을 직감했던 것일까요? 모처럼 팀 파워스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디클레어” 라는 제목의 2001년 작품인데 킴 필비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소개된 팀 파워스의 작품의 특징은 주로 19세기를 무대로 알려진 역사에 판타지를 정교하게 중첩시키는 것입니다. 주 등장인물들이 잘 알려진 문학가라는 점도 또 다른 특징입니다. 이 번 작품은 20세기로 무대를 옮기고 문학가보다는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전작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역사와 판타지의 짜깁기는 더 정교해져서 독자의 피로도가 너무 증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작가 후기를 보면 알려진 어떤 역사적 사실과도 어긋나는 부분이 없다고 자신합니다. 그걸 검증하고 있을 정성이 제게는 없습니다만, 작품은 재미있습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너무 강해서 살짝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재미를 해칠 수준은 아닙니다. 읽다 보니 전에 읽다가 미뤄둔 아라비안 나이트를 끝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자세히 들어가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줄입니다. 관련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