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 복수기
“우범선”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을미사변 당시 훈련대의 제2대대장을 맡고
있으면서, 일본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성공시키는데 공을 새운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씨 없는 수박의 발명자”로 잘못 알려진 농학자
“우장춘”의 친부이기도 합니다. 이 인물은 한국인들과 정부에게 민비 시해의
주범으로 인식되었고, 뒤이은 아관파천 때 일본으로 망명하여, 그 곳에서
고영근이라는 인물에게 암살당하게 됩니다. 한편, “고영근”은 민씨 집안의
청지기로 출발하여, 궁을 드나들면서 고종과 민비의 총애를 받아 출세한
인물입니다. 민비 시해 이후, 한때 왕실의 어용단체인 “황국협회” 의
부회장으로 활동하다가, 독립협회 해산 후에는 “황국협회”의 반대세력인
“만민공동회”의 회장으로 추대되는 아주 독특한 인물입니다. 거듭되는 정부의
탄압에 폭탄투척으로 대항하다가 결국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채 일본
망명생활을 시작합니다. 이 때 본인의 주장에 의하면 국모 살해의 복수를
위해 “우범선”을 암살하게 됩니다. 일본 법정에서 1심에 사형, 2심에서
무기를 선고 받고 몇 년 형을 살다가 석방되어 한일합방 전해에야 조국으로
돌아옵니다. 이 암살로 인해 그전의 죄는 사함을 받은듯합니다. 이 후 조용히
살다가 고종이 죽자 능지기를 자청하여 홍릉을 지키는 능참봉에 임명됩니다.
마지막으로 일제가 금하고 있던 능비를 몰래 새운 일로 조선을 떠들썩하게
하고는 물러나 죽은 후에 고종의 능 밑에 뼈를 묻습니다. 이 파란만장한 두
인물의 역사 속 궤적을 더듬습니다. 한일합방으로 달려가는 혼란한 사회
속에서 두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부딪치는지 찬찬히 살핍니다. 그
움직임의 얼마만큼이 본인들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심스럽기는 합니다.
저는 고종이 인정받을 만한 역할을 수행한 왕이라고도, 민비역시 그 나름의
긍정적인 역할이 있었다고 믿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을미사변은 그
참혹함이 우리를 이루고 있는 정체성의 어느 부분에 대한 능멸로 다가옵니다.
그런 면에서 “우범석”은 우리 내부로부터의 배신이고, 꼭 응징해서 지워야 할
위험한 기억입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우범석”에게 그
당시의 조국은 무엇이었을까? 고영근이 복수의 칼을 들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서도 좀 다뤄지지만 이 사건보다
전에 일어났던 갑신정변으로 망명생활을 하던“김옥균”의 암살사건이
있습니다. 이때의 자객은 홍종우라는 인물로, 후에 “황국협회” 의 회장이
되어 “고영근”과 충돌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다룬 책으로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가 있습니다. 함께 보시며 비교하시면 좋을듯합니다.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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