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를 기억함
![]() |
스티브 잡스 -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민음사 |
제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1983년 봄에 애플II 컴퓨터를 만나고부터입니다. 친구 집에서 발견하고는 몇 달간 방과후에 들렸다 밤늦게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요. 결국 여름쯤에는 통장을 탈탈 털고 아버지에게 사정하여 제 것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애플사의 정품 은 아니지만 얼마나 행복했던지…… 당연히 이런 즐거움을 선사한 두 명의 스티브에게 관심이 가게 됩니다. 그 당시에 컴퓨터를 배우던 학생들에게는 잡스보다 워즈니악이 훨씬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한 잡스는 낮춰 말하면 장사꾼이고 좀 쳐주면 마케팅 감각이 있는 사업가였지요. 반면에 워즈니악은 적어도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탁월한 업적을 이뤘고, 기술자들의 자유에 대한 동경에 공감했으며, 호인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런 구분은 지금도 어느 정도는 유효합니다. 미리 준비한 듯이 잡스의 사망에 맞춰서 전기가 출판되었습니다. 제가 몇 번이고 킨들로 예약 주문한 것을 자랑하곤 했는데 이 책도 같은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두께를 미리 가늠하지 못했네요. 엄청나게 길더군요, 읽던 도중 몇 번이고 내가 과욕을 부린 것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만 어찌어찌 끝냈습니다. 그 동안 재워두다 보니 어느덧 일주년이 되었고 번역본은 블랙에디션이 나왔군요. 전화기 색깔마냥 바꿔대는 것을 보니 출판 마케팅도 변화하고 있나 봅니다. 책에서 묘사되는 잡스의 인간적인 면모는 그리 닮고 싶은 모습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에는 "괴팍하다" 정도였던 평가가, "편견, 시기, 악의"등으로 가득 찬 "상당히 위험한 인물"로 바뀝니다. 그럼에도 매혹하는 면이 있습니다. 물론 비즈니스적인 성공이 주는 속물적인 후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를 끌어당기는 가장 큰 힘은 "신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를 믿고 싶어합니다. 내게는 없는 확신을 누군가는 갖고 있길 원하고, 그 사람을 따르면 선택에 대한 책임도 대신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잡스는 그런 것들을 제공했습니다. 그의 신념이 모두 옳지는 않았더라도 해로울 만큼 틀린 부분이 있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샅샅이 뒤져도 수 많은 가짜 신념들로부터 미래의 잡스를 골라낼 수 있는 시금석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동안 그를 추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