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유니버스 (The Hidden Reality)

멀티 유니버스 - 9점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김영사

블로그를 잠시 멈춘 시점이 이 책을 읽을 때였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가장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한 책이기도 합니다. 찾아보니 번역본이 올해 2월에 나온 것 같지만 제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 3월입니다. 당시 아마존에서 브라이언 그린의 신간 예판이 걸린다는 안내가 왔고, 볼 것 없이 BUY 버튼을 클릭했던 것 같습니다. 보통은 예고 한 날 보다 조금 빨리 제 킨들로 전자책이 들어옵니다. 현지 오프라인 서점에 책이 깔리기도 전에, 한국의 독자가 점심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펼쳐 든 킨들로 도둑처럼 찾아옵니다. 이 맛에 킨들을 쓰지요. 한국 서점에서는 언제나 신간 예판을 전자책으로 신청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과는 다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섬뜩한 공통점을 갖고 있는 세계가 있다는 설정은 영화, 드라마, 소설에서 이미 익숙합니다. 평행우주나 멀티버스는 물론이고 "매트릭스" 나 "13층" 류의 가상세계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 "13층" 을 보는 도중 엔지니어 모드로 바뀌면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실행중인 소프트웨어가 자신이 가상기계(Virtual Machine)에서 실행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까? VMWare 에서만 통하는 방법 말고, 근본적으로 앞으로 나올 상상 가능한 모든 종류의 가상기계에 적용될 수 있는 원리가 있을까? 가상기계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까? 가상기계는 현실과 다른 어떤 속성을 갖고 있을까? 아내의 깊은 한숨 소리로 끝내게 되는 공상입니다. 내부에서 내가 속한 세계를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매혹적입니다. 반증 가능한 명제를 끌어내고, 시험할 수 있는 가설들을 수립할 수 있다면, 아무리 기괴한 주장이라 하더라도 허튼 몽상으로 치워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주를 노래하는 시인 브라이언 그린이 "현실에 의해 가려진 다른 세계”를 논합니다. 우리의 일상에 널리 퍼져있는 상상뿐만 아니라 양자역학과 우주론등 진지한 학문의 영역에도 평행우주나 멀티버스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곤란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빠짐 없이 나열하고, 설명하며, 혹시 실험적으로 진위를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살핍니다. 작가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평행우주나 멀티버스가 없는 것이 오히려 기괴하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책의 앞 부분은 쉽게 따라갈 수 있지만 뒤로 갈 수록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금방 길을 잃습니다. 제가 보기에 작가의 전작들보다 난이도가 높은 것 같습니다. 출판사가 "승산" 에서 "김영사" 로 바뀌었는데 번역자는 같군요. 번역본을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엘러건트 유니버스" 나 "우주의 구조”를 볼 때 번역의 품질은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