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아가 보고 있다(The Stress of Her Regard)

라미아가 보고 있다 - 8점 팀 파워즈 지음, 김민혜 옮김/열린책들

흡혈귀를 소재로 이토록 독창적인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 마법사는 “아누비스의 문”으로 우리에게 스팀펑크(Steampunk)의 세계를 보여준 팀 파워스입니다. 꽤 여러 작품이 있지만 국내에 소개된 것은 이 두 작품뿐인 것으로 보입니다. 19세기의 유럽을 배경으로 흡혈귀, 뮤즈, 라미아, 릴리스의 후손, 무지개의 약속, 그라이아이등의 신화적인 요소들로 만들어낸 무대에, 조지 바이런, 퍼시 셸리, 존 키츠등의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킵니다. 이들의 과거 언행, 행동, 죽음이 작가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며, 허구와 짜깁기 되는데 그 이음새를 찾기 어렵습니다. 영국 낭만주의 3대 시인이 주인공이 되는 이유는 뮤즈를 흡혈귀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적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피와 살을 먹이로 삼는 존재.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뱀의 모습을 가진 그리스신화의 라미아입니다. 특히 바이런은 시적 영감을 위해, 위험한 거래를 하는 파우스트 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스토리 라인에서 키츠가 치지하는 부분이 다른 부분과 약간의 틈을 보인다는 느낌이 들지만, 캐릭터들은 역사적 맥락에서 움직이는 수동적인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순전히 허구의 주인공인 크로퍼드와의 관계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살아있는 인물들입니다. 아마도 파워스의 작품이 모두 이렇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이야기의 밀도는 굉장히 높습니다. 6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이지만 1000쪽 정도 본듯한 느낌이 나는군요. 다 읽고 나니 푸짐하게 차려진 풀코스 정찬을 마친듯합니다. 문학적인 격조와 숨가쁜 액션과 그로테스크한 고딕양식모두를 만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피비린내 나면서도 매혹적입니다. 적어도 제 어두운 본성을 자극합니다. 연결되는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작품에도 등장하는 퍼시 셸리의 아내가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입니다. 역시 작품 중에 등장하는 바이런의 주치의 존 폴리도리는 뱀파이어물의 원조로 인정되는 “뱀파이어”라는 작품을 쓴 인물입니다.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책세상에서 펴낸 “뱀파이어 걸작선”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관련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