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 시절 대학로에 있는 학산기술도서관에 자주 가곤했다. 이과생들만 회원으로 받는 독특한 도서관인데, 시설도 좋고 도서구입 예산도 넉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삼천리 자전거와 기아 자동차의 창립자 김철호 회장의 뜻을 기려 만든 도서관인데, 학산은 그의 호다. 창립 기념일에 갔더니 마당에서 맥주 파티를 여는데, 경품 추첨에 당첨되어 근사한 자전거 한대를 선물로 받았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저녁 산책 중에 네이버 지도를 보니, 근처에 학산도서관이라는 곳이 나온다. 익숙한 이름이라 찾아보니, 2002년에 평창동의 신축 건물로 이사왔고, 2008년에 학산도서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평범한1 도서관이 되었다고 한다.
평일에만 문을 열고, 그나마도 6시면 닫아서 접근성은 거의 주민센터에 붙은 작은도서관 수준이다.2 산책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그림의 떡이다. 일찍 들어온 날 학산 도서관에 간다고하니, 마님이 같이 간다고 나선다.
산책로에서 돌아오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오늘은 평소와는 반대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낮에 걷기에는 좀 더운 날씨다. 한참을 가다가 마님이 다음부터는 이방향으로 가지 말자고 한다. 오르막이 너무 길어서 힘들단다. 산책로를 거꾸로 다 돌 생각은 아니지만, “거꾸로 가나 바로 가나 제자리로 돌아올 거면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지. 혹시 비대칭인가?
평창동은 서울에서 고지대에 속하는데, 평창동 내에서도 오르내림이 좀 있는 편이다. 산책로도 100m 정도의 고도 변화가 있다. 짧지만 가파르게 올라간 후, 길고 완만하게 내려온다. 오늘은 반대 방향이니 길고 완만하게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두 경로의 오르내림은 순서만 다를 뿐 총량은 정확히 같아야 한다. 각 지점에서의 경사는 크기가 같고 부호만 반대다. 걷는 거리도 같다. 하지만 경사의 부호에 따라 속도가 대칭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소요 시간은 달라질 수 있다. 더 오래 걸린 길이 더 힘든 길이다.
찾아보니 토블러의 하이킹 함수(THF - Tobler’s Hiking Function)라는 것이 있다. 1993년에 토블러가 경사와 걷기 속도간의 관계를 지수 함수로 모델링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관계를 발견했다.
\begin{equation*}
W = 6 \exp(-3.5\Big|\frac{dh}{dx}+0.05\Big|)
\end{equation*}
W 는 걷는 속도인데 km/h 단위다. h 는 고도, x 는 수평 거리다. 따라서 \frac{dh}{dx} 는 기울기가 된다. 더 익숙한 경사각 \theta 로 표현하면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