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신의 잃어버린 도시

원숭이 신의 잃어버린 도시 - 8점
더글러스 프레스턴 지음, 손성화 옮김/나무의철학

온두라스의 원시림에 "백색 도시"라는 저주받은 도시가 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원숭이 신의 도시" 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몇몇 탐험가들이 발견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진위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한때 번성했으나 신의 저주를 받아 한순간에 몰락하고 지금은 그 토대를 찾을 수도 없는 잊힌 문명.

요즘은 자율주행 차에 자주 쓰이는 라이다라는 신기술의 도움으로, 원시림에 감춰진 비밀이 드러납니다. 이 탐사대에 동반한 <셔널 지오그래픽> 의 특파원이 매혹적인 이야기를 전합니다. 발견의 순간에는 나도 그런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는 설렘이 듭니다. 하지만 이는 아주 잠깐이고, 독사와 온갖 질병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아주 매끄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원서는 2017년에 출간된 <The Lost City of the Monkey God> 입니다.

플라워 문

플라워 문 - 10점
데이비드 그랜 지음, 김승욱 옮김/프시케의숲

해마다 5월이 되면 오세이지 인디언들의 광대한 영토를 뒤덮은 꽃들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5월을 "꽃을 죽이는 달" 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오세이지 인디언들은 백인들에게 자신들의 광활한 영토를 뺏기고, 캔자스 남동부로 피신합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백인 이주민들의 약탈에 견디다 못해, 땅을 판 돈으로 백인들이 눈독을 들이지 않는 불모지를 사서 이주합니다. 그 후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이 땅을 오세이지 인디언들에게 분할하며, 그 밑에 있는 광물 자원에 대한 권리 역시 인정한다는 약속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제 백인들 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듯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유전이 발견되고, 그 결과 갑작스럽게 인디언들이 부유해지고, 다시 비극이 시작됩니다.

이미 잃어버린 도시 Z 로 한번 소개한 데이비드 그랜이 작년에 새로 낸 책(Killers of the Flower Moon)입니다. 번역본은 올가을에 나왔습니다. 전작보다 더 뛰어난 논픽션입니다. 치밀한 자료 조사는 물론이고, 추리 소설의 느낌을 받을 정도로 이야기 전개가 흡입력이 있습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습니다. 좀 우울해져도 상관없다면 꼭 보세요.

골목길 역사산책 서울편

골목길 역사산책 : 서울편 - 8점
최석호 지음/시루

한국 근대사의 자취가 남아있는 장소들을 중심으로 산책로를 소개합니다. 말이 심하게 많은 가이드처럼 그 주변의 역사를 안내합니다.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만, 듣다 보면 산책 중이었다는 것을 가끔 잊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장마다 지도를 곁들인 요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부암동, 정동, 북촌, 서촌, 동촌을 차례대로 방문합니다. 이 중 부암동 산책길은 제 산책길이기도 합니다. 좀 멀리 갈 때는 서촌 산책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백사실 계곡은 추사 김정희의 별서 정원이 있던 자리인데, 여름에는 아이들 데리고 배드민턴 치면서 놀다 오던 곳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로는 오히려 자주 찾지 않게 되네요. 저자도 이곳에 있던 연못과 정자가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1935년에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을 인용하고 있는데, 아주 최근까지도 있었다는 것을 조사하지는 못한듯합니다. 지역 주민이다 보니 부암동 편은 제가 이 책을 평가하는 시금석 역할을 합니다. 산책로에서 소개하는 곳들은 대체로 널리 알려진 것들입니다. 이곳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가이드라는 느낌은 나지 않지만, 그곳에 얽힌 이야기들이 보충합니다. 한 번쯤 이 책 들고 걸어보면 재미있을듯합니다.

이런 기획의 책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2010년에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저자, 출판사, 서점들이 밝히지 않는 내용이 있습니다. 2015년에 출판된 골목길 근대사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인 "최석호" 외에도 두 명의 공저자가 같은 출판사에서 펴냈는데, 정동, 서촌, 동촌에 대한 내용이 이 책과 겹칩니다. 자세히 비교해보면, 이 책을 "골목길 역사산책" 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확장한 증보판입니다. 나머지 두 저자가 사라진 것으로 보아, 아마도 "최석호" 씨가 주저자였던 것이 아닐까요? 혹 아니었다 하더라도 증보한 내용(가령 각 장에 상당량의 내용이 추가되었고, 부암동과 북촌은 새로 더해진 장입니다)은 상당합니다. 두 권으로 나눴다고 했는데, 이 책은 "서울편" 외에도 "개항도시편" 이 더 있습니다. "개항도시편" 도 다음에 소개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황금방울새

십 년에 한 번씩 세상에 나와 문학상을 쓸어가시는 분이 있다. 도나 타트. 그녀의 세 번째 소설이다.

소년 시오는 미술관에서 폭탄 테러로 엄마를 잃고, 자신은 큰 상처 없이, 얼떨결에 전시되어 있던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라는 작은 그림을 들고나오게 된다. 이후로 상실, 집착, 선택, 유약함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일단 무지하게 재미있으면서도, 문장, 플롯 어느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다. 디킨스 적이라는 평들이 있는데 올리버 트위스트나, 데이비드 코퍼필드처럼 성장 소설이라는 점,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들이 우연으로 얽혀들어 가는 것, 중심 플롯 주변의 잔가지가 무성하다는 점이 비슷하다. 그리고 작품이 무척 길다.

<황금방울새>라는 그림은 네덜란드 화가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1654년 작품인데, 같은 해 파브리티우스는 화약 공장 폭발 사고로 사망한다. 묘한 겹침이다. 이 그림의 크기가 A4 용지보다 조금 큰 정도라는 것을 기억해두면 좋다.

출판사의 광고를 보면 "완독률 98.5%의 압도적 1위"라는 구절이 있다. 완독률 98.5%? 가능한 소린가? 찾아보니 호킹 지수라는 것인데 "아마존 킨들을 통한 완독률"이라고 출판사는 소개하고 있다. 마치 1,000명이 시작하면 15명 빼고 모두 끝까지 읽는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좀 믿기 어려운 소리다.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전부 1,068쪽의 책을 평균 1,052쪽까지 읽는다? 이 역시 믿기 어려운 것은 매 한가지다. 호킹 지수 98.5%는 완독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숫자다. 아마 책의 끝부분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독자들이 많다는 뜻이리라.

리틀 드러머 걸

리틀 드러머 걸 - 8점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박찬욱 감독의 연출로 만들어지는 동명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라,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책을 집어든 이유도 다르지 않다. 아이고 더 미루면 안되겠구나. <나이트 매니저> 처럼 일단 드라마를 먼저 보고나면, 책을 읽을 기회는 없어진다. 책장 가득 쌓여있는 다른 책을 미루고 볼 이유가 있을까?

스파이물의 극 사실 주의 작가 <존 르 카레>의 작품은 이 블로그에 5번째 소개된다. 작품 수가 스무편이 넘으니 아직도 많이 남았다. 분량도 넉넉하고, 농도도 높아서 읽고 나면 포만감이 좋다. 작전을 준비하는 1부만 390쪽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을 잡기 위해 여배우를 포섭하는 내용. "테러리스트 잡는 정의의 사도" 가 등장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나무 등걸의 주름하나, 붙어있는 벌레 하나까지 모두 그려낸다. 그래서 극 사실 주의고, 그래서 추악함의 선명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싱글톤

지난 포스트에서 가상 환경 친화적 앱이 어떤 특성을 가져야 하는지 설명했다. 그 글에서 마지막에 소개한 Application Singleton을 이제 구현해보려고 한다.

싱글톤을 만드는 방법부터 시작하자.

Read more...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 8점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지음, 박성식 옮김/가람기획

기원전 2333년.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믿고 있는 해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지 궁금했다. 비슷했겠지? 고작 4천 년 동안 사람이라는 동물이 뭐 그리 많이 달라졌을까? 동물로서의 사람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문화는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시절에 남겨놓은 기록이 없으니 궁금해도 참고 살 수밖에요.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지금의 이라크 남부 지역에서는 수메르인들이 쐐기문자로 점토판에 기록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수메르인들이 이곳에 살기 시작한 지는 훨씬 더 오래되었지만, 대략 기원전 3,000년쯤부터 상형문자를 쓰기 시작했고, 기원전 2,500~2,000년쯤에는 표음문자 체계로 넘어옵니다. 일단 표음문자가 되면 해독이 비교적 쉬워집니다. 그래서 고조선 사람들과 비슷한 시기에 살고 있던 수메르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평생 수메르에 매달린 학자가 이 점토들에서 발견된 생각들을 39개의 주제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길가메시 이야기도 있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처음 세 가지입니다. <학교>, <촌지>, <청소년 문제>입니다. 그 당시에도 "요즘 젊은것들은...", "선생님 저희 아이 좀 잘 부탁합니다" 가 있었다는 내용인데,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소위 세계 4대 문명 중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고 있고, 이 책이 사방에서 <최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지요, 아마 더 앞선 문명들의 증거는 또 등장할 겁니다. 하지만 그 문명들이 이처럼 상세한 기록을 남겨두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니 기록으로만 따지면 계속 최초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처음 번역되어 출간된 것은 2000년이고, 제가 읽은 것도 그 근방일 겁니다. 원서(History Begins at Sumer: Thirty-Nine Firsts in Recorded History)는 더 오래되었는데, 초판이 나온 것이 1956년, 이 번역본이 원전으로 삼고 있는 3판이 나온 것이 1981년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도서관에 가니 새로 들어온 책 전시대에 놓여 있더군요. 서지 정보를 보니 올해 개정판이 나왔다네요. 가진 책과 대조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뭘 개정했다는 건가? 내용에서는 차이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과거에는 "역사 명저 시리즈" 의 1권으로 나왔으나, 이번 책은 그런 시리즈에 속하지는 않았습니다. ISBN이 바뀌었고, 표지가 좀 달라졌고, 가격이 20% 올랐습니다.

나이트 플라이어

나이트플라이어 (일러스트 에디션) - 6점
조지 R. R. 마틴 지음, 김상훈 옮김/은행나무

가늠도 되지 않는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호러. 곁들여진 컬러 삽화로 그래픽 노블의 느낌을 가미한 중편. 재킷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하루나 이틀만에 끝내기에 적당한 판형과 분량.

<조지 R. R. 마틴> 이라는 이름 때문에 집어든 책이지만, 1980년에 처음 나온 책이 지금 번역되어 나온 이유는, 아마도 Syfy 에서 드라마로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전에 만들어진 영화는 망했다는 것 같은데, <익스팬스> 만큼만 만들어주면 볼만 할 수도.

이 작품의 중심 키워드는 <호러>인데, <샤이닝>과 비교하는 서평이 붙어있기도 하지만, 그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중편이라 캐릭터를 깊이 파고들지도 못한다. 초능력이 등장하는 작품에 SF 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늘 불편하다. 그냥 판타지라고 하면 격이 떨어지나?

가상 환경 친화적 앱

Rule 0 - 응용 프로그램은 가상 환경에서 실행된다

좀 오래 묵은 글이지만 파이썬의 가상 환경의 장점에 대해서는 이미 소개한바있다.

그래서 일단 가상 환경을 쓰기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거꾸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 때, 이 가상 환경에 좀 더 친화적이고, 가상 환경이 주는 혜택을 좀 더 끌어낼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이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Read more...

데이비드 코퍼필드

디킨스 번역판들을 연대순으로 훑고 있다. <올리버 트위스트> 와 <오래된 골동품 상점> 를 거쳐 이제 막 <데이비드 코퍼필드> 를 마쳤다. 원래 한 권짜리 동서문화사 판을 사뒀는데, 결국 읽은 것은 도서관에서 빌린 비꽃에서 나온 세권짜리다.

디킨스 작품과 코드가 맞는 편이라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 지친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알려진만큼, 디킨스 자신의 인생 행보와 묘하게 겹치는 장면이 많다.

지금 생각해보니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하나는 작품속에 드러나는 사회가 상당히 계급화되어 있는데, 이 작품만으로는 충분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 당시 영국의 계급 사회에 대해 딴 책을 한 권 찾아읽어야하겠다. 둘째는, 술에 관한 것이다. 작품 초반에 코퍼필드가 런던 공장에서 일할 때, 모은 돈으로 술집에 가서 맥주를 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의 주인공 나이가 8세(11세인가?). 이런식으로 어린 아이들이 술을 찾아다니는 장면은 쥘 베른의 <십오소년 표류기> 에도 등장한다. 난파선에서 탈출한 후에 다시 돌아가 생필품들을 챙겨오는데, 처음 찾아 다니는 것이 브랜디 상자다. 옛날 유럽이 알콜 중독 상태였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듯.